발해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은 여러 갈래로 분산되었다. 일부 귀족들은 당으로 끌려가기도 하였으나, 많은 유민들이 당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당의 군대와 안동 도호부를 요동 지방으로 몰아 냈다.
때마침 당의 가혹한 수탈에 시달리던 거란의 추장이 반란을 일으키자, 요서 지방에 있던 대조영은 이를 틈타 고구려인과 말갈인들을 이끌고 랴오허 강을 건너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이에 당은 말갈인부대를 격파하고 고구려 유민들을 뒤쫓았다. 대조영은 추격해 오는 당군을 격파하고,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모아 길림성의 동모산 근처에 도읍을 정하고 발해를 세웠다(698).
발해의 주민은 주로 고구려인과 말갈인이었다. 지배층의 핵심은 고구려인이었고, 피지배층은 주로 말갈인이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 발해를 고구려로, 발해 왕을 고구려왕으로 칭하여 고구려 계승 의식을 분명히 하였다. 발해의 건국으로 우리 역사는 통일 신라와 발해가 양립하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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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HOSEOK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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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jing,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