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심사는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증심사는 신라 헌안왕 4년에 철감 선사 도윤이 처음 창건했다고 하며, 고려 의종 11년에 혜조국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조선 세종 25년에 김방이 세 번째로 중수하면서 오백전을 지어 국태민안을 기원했으나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아픈 과거도 있다.
일제 초기 증심사는 항일적인 임제종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으로 오백전과 노전만 남겨놓고 모두 불에 타버리게 된다. 증심사의 현재 건물은 오백전, 산신각, 비로전, 대웅전, 지장전, 적묵당, 행원당, 종각, 일주문 등으로 되어 있다. 한국 전쟁의 참화를 피한 오백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970 - 80년대에 복원된 건물이다.
비로전에 모셔진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으로 보물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로자나불의 손 모양은 대부분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이 감싸 쥐고 있는 모습인데, 증심사의 비로자나불은 특이하게도 손의 위치가 반대이다. 이 불상은 여느 불상의 모습처럼 근엄한 표정이 아니라 우리네 모습처럼 인간적인 표정을 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증심사의 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화재는 삼층 석탑이다.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이 탑은 현재의 높이 3.4미터의 조그마한 탑이지만 탑의 모양으로 보아 신라 하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갸름한 얼굴에 높은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는 석조보살 입상은 고려 시대의 것으로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입상은 전남 담양군 남면 정곡리 서봉사 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석조보살 입상과 나란히 서 있는 범자칠층석탑도 서봉사의 유물인데, 탑신의 각 면에 "옴마니반메훔"이라는 밀교의 진언이 범자로 새겨져 있다. 이것은 희귀한 예로서 미술사나 불교사상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Other terms in this blossary
작성자
- HOSEOKNAM
- 100% positive feedback
(Beijing, China)